<검은 신화: 오공>의 개발사 게임사이언스의 펑지 CEO가 웨이보를 통해 ‘더 게임 어워즈(TGA)’의 수상 기준에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올해의 게임(GOTY) 선정 기준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시상식에 괜히 참여했다”는 발언을 남겼습니다.
펑지 CEO는 GOTY 수상을 확신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럴 만합니다. <검은 신화: 오공>은 출시 직후 스팀 동시접속자 240만 명을 달성하고 2주 만에 글로벌 누적 판매량 1,800만 장을 넘겼으며, 지난 11월 골든 조이스틱 어워드에서 2024년 GOTY를 수상했습니다. 중국 최초의 콘솔 AAA급 게임으로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만큼 거는 기대가 컸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검은 신화: 오공>은 분명 잘 만든 게임입니다. 특히 이 작품의 모티브인 ‘서유기’를 알고 있는 플레이어 사이에서는 ‘서유기의 가장 완벽한 재해석’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입니다. 액션도 액션이지만 중국의 색을 아주 자연스럽게 게임에 녹여냈다는 점에는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2년 전부터 GOTY 수상 소감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는 발언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범주입니다. 조금만 다르게 표현했다면 ‘훌륭한 게임을 탄생시킨 개발사의 자신감’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겠죠. 그가 작성한 게시글 중 단 한 줄, ‘올해의 게임 선정 기준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그 발언만 아니었다면 이토록 비난받을 일도 없었을 겁니다.
문제는 발언의 수위가 다소 강하고 부적절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게시글을 요약하자면 ‘우리는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게임을 만들었고 그 사실에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고 있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문제가 된 발언도 다소 유머러스한 투덜거림 정도의 뉘앙스입니다만, 웃어넘기기에는 너무 강한 워딩이었습니다.
비록 GOTY 수상은 불발됐으나 그 사실이 게임에 대한 평가를 깎아내리지는 않습니다. 수많은 경쟁작을 제치고 최종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결과인데, ‘최고의 액션’과 ‘플레이어의 목소리’ 부문에서 수상을 기록하며 2관왕을 달성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상황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그의 발언은 TGA의 권위뿐만 아니라 GOTY를 수상한 ‘아스트로봇’의 팀 아소비에 대한 비난으로까지 비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검은 신화: 오공>의 평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애꿏은 ‘발더스 게이트3’가 중국 게이머들에게 스팀 평가 테러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골든 조이스틱 GOTY 수상, TGA 2관왕 등 명예로워야 했을 타이틀이 온갖 사고와 비난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은 그저 씁쓸할 따름입니다.
하나의 자리를 놓고 겨룬 경쟁자에게 선뜻 축하의 메시지를 건네긴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괜한 발언으로 자신의 가치를 끌어내릴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신수용 기자(ssy@smartnow.co.kr)
◈ 웨이보에 등록된 ‘펑지 CEO’의 게시글 전문 번역 [원문 링크]
TGA 시상식이 끝난 지 하루가 지났네요. 이제야 한숨 돌리고 마음속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어쩌면 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어제는 무대에 오를 기회가 없었으니까요. (웃음)
1
이번 시상식은 마침 저희가 꽤 큰 업데이트를 선보인 시기와 겹쳤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7년간 매달린 프로젝트가 이제야 하나의 마침표를 찍은 것 같아요.
《검은신화: 오공》의 네 개 부문 후보 지명(베스트 액션 게임, 베스트 아트 디렉션, 베스트 게임 디렉션, 올해의 게임)은 중국 최초입니다. 그중 최우수 액션 게임과 ‘플레이어스 보이스’를 수상했죠. 특히 플레이어스 보이스를 받은 것은 정말 큰 위로가 됐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아쉬움도 남고, 미련도 있어요. 무엇보다 이제는 환상을 내려놓게 되네요.
올해 후보로 올라온 게임들은 모두 뛰어났지만, 이번 ‘올해의 게임’ 선정 기준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제발 기준 좀 알려줘요. 괜히 왔잖아요!
2
시상식 이후부터 지금까지, 많은 플레이어들이 보인 강한 불만과 감정도 봤습니다. 대부분은 유머와 해학으로 표현됐지만 그 안에 깃든 아쉬움과 억울함은 저도 충분히 공감해요.
왜냐하면 이런 감정의 밑바탕에는 자존심과 자신감이 있으니까요.
그런 자신감이 외부에서 인정받지 못했으니 열받는 게 당연하죠. 저도 사실 여러분보다 더 자신만만했습니다. (참고로 제가 썼던 첫 지식인 글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올해의 게임 수상 연설문도 사실 2년 전에 이미 준비해 놨거든요. 결국 쓸일은 없었지만요. [쓴웃음]
게임 개발 중간중간에 많은 동료들은 저처럼 낙관적이지 않았어요. 계속된 중간 버전 테스트와 끝없는 디버깅으로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을 테니까요.
그럴 때마다 제 역할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었죠. “우리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게임은 계속 나아지고 있다.”
맞아요. 이기고 나서 보이는 자신감은 진짜 자신감이 아니에요. 그건 결과를 반복해서 말하는 것뿐입니다.
오늘 졌다고 해도, 내일 또 질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요? 결과는 수많은 변수에 의해 결정되니까 당연히 불확실할 수밖에 없죠. 우리가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길을 걸어가느냐뿐입니다.
구체적인 일을 하고, 어려운 일에 도전하며, 믿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당연히 자신감을 가져야 해요.
3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싱글 플레이 게임을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 팀이 첫 작품에서 이런 성과를 낸 건 우연의 산물이다. 다음에도 이런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에요. 이 필연은 중국의 문화, 중국의 인재, 중국의 산업 환경, 중국 게임 시장이 전 세계의 게이머들과 부딪히며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저희가 일찌감치 이 ‘필연’을 보지 못했다면, 이런 선택을 하며 나아갈 수 없었을 거예요. 우리는 무모한 도박을 한 게 아니라 흐름에 따라 나아간 것뿐입니다.
게임사이언스는 이 흐름의 시작을 함께한 팀 중 하나일 뿐이에요. 저는 믿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개발사들이 전 세계에 더 나은 게임, 더 재미있는 이야기, 그리고 더 자신감 있는 중국의 이야기를 보여줄 거라고요.
4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말이지만 출처를 모르는 문장이 있습니다. 바로 《서유기》의 구절이에요.
“세상에 어려운 일이란 없다. 다만 마음먹기에 달렸을 뿐이다.”
제 해석은 조금 다릅니다.
이 문장은 “마음만 먹으면 어려운 일을 정복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더 정확히 해석하자면 “어려운 일을 마주할 용기를 가지면, 그 어려움이나 실패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뜻이죠.
어려움에 맞서는 태도를 갖추면, 실패는 우리를 쉽게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불가피한 어려움과 차분하게 싸워 나갈 수 있는 사람의 인생은 그만큼 더 단단해질 거예요.
어려우니까 재미있는 법이니까요.
5
왜 저희 회사 이름이 ‘게임사이언스’일까요?
우리는 수학과 물리학,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 접근과 엔지니어링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려 했습니다. 우리는 신비주의나 비합리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그저 복잡한 현실을 직시하려 했습니다. 뛰어난 경쟁자들의 진짜 ‘강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기 위해서요.
만약 누군가가 논리나 근거 없이 “이건 어려워”, “이건 알 수 없어”라고만 말한다면, 그에게 편미분을 시험해보아야 해요.
과학은 진리가 아니에요. 과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진지한 태도이죠.
6
사실 게임을 만들고,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큰 행운입니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3A 게임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요. 컴퓨터나 콘솔을 써본 적 없는 사람들도 많고, 현실에 좌절하고 아파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세상이기에, 우리는 더욱 더 좋은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진실, 선함, 아름다움을 전하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요.
좋은 게임은 이 세상의 행복을 조금이나마 더 공평하게 나눠줄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아직 갈 길은 멀고, 바람은 여전히 거세며, 요괴들은 여전히 건재하지만, 우리는 계속 강해지고 있어요.
7
마지막으로, 검은신화: 오공의 이야기가 방황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되길 바랍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빛을 따라 묵묵히 걸어가며, 불확실한 결과를 평온하게 받아들이고, 성실히 한 걸음씩 나아가길 바랍니다.
헤밍웨이가 이런 말을 했죠. “이 세상은 아름답고, 싸울 가치가 있다.” 길을 잃었더라도, 다시 한 걸음 내디뎌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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