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20주년, 이제는 넥슨의 간판 게임으로 자리 잡은 ‘던전앤파이터’는 IP 확장을 위해 다방면으로 힘을 쏟고 있습니다. 만화, 소설, 애니메이션 등 게임 외 콘텐츠 수십여 종을 비롯해,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던전앤파이터 TCG’, ‘DNF 듀얼’ 등 장르와 플랫폼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신작을 선보여왔습니다. 한국 게임사를 통틀어봐도 이 정도로 폭넓게 IP 확장을 시도한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런 ‘던전앤파이터(이하 던파)’가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을 시도합니다. 네오플에서 개발 중인 신작 <퍼스트 버서커: 카잔(이하 카잔)>의 이야기입니다. 장르는 3D 하드코어 액션 RPG로 좀 더 직접적으로 비유하자면 소울라이크에 가까운 장르입니다.
정의가 모호한 탓에 썩 좋아하는 명칭은 아닙니다만, 이 게임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소울라이크라는 명칭이 가장 이해가 쉬울 듯합니다. 개발사에서도 굳이 그런 표현을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여타 유사 장르와는 달리 소울라이크가 아닌 ‘던파’다운 모습을 완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으며, 하드코어 액션을 표방한 이유는 다소 어려웠던 초창기 ‘던파’의 재미를 살리기 위함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 던전앤파이터 세계의 800년 전 이야기를 다룹니다.
단, 평행세계 설정이기에 완전한 과거 이야기는 아닙니다.
서사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소울라이크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먼저 다크 판타지 기반의 암울한 분위기로 플레이어의 호기심을 끌어냅니다. 그러면서도 이야기 자체는 중심이 되는 큰 가지만을 아주 간결하게 다룹니다. 그 외 전반적인 세계관에 대해서는 플레이어가 맵 디자인, 대사, 아이템 등 각종 요소를 찾아다니며 단서를 수집하고 유추해야 합니다.
이는 관심 있는 플레이어에게 세계관을 깊숙이 파고들어 씹고 뜯고 맛보며 오래도록 놀거리를 제공한다는 이점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불친절하다고 여겨지기 쉬운 방식이기도 합니다.
▲ 부차적인 세계관은 아이템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합니다.
그래서인지 <카잔>에서는 서사의 중심축인 ‘카잔의 복수극’을 비교적 상세하게 전달합니다. 그러면서도 적들이 스치듯 내뱉는 대사, 각종 수집형 아이템의 설명, 시체에서 라크리마를 흡수할 때 들려오는 망자의 기억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세계관을 펼쳐놓습니다. 핵심이 되는 부분은 확실히 보여주되, 필수적이지 않은 나머지 요소는 관심이 있는 이들만 찾아보라는 의미입니다.
‘던전앤파이터’의 스토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필자도 <카잔>의 서사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원작을 잘 아는 팬이라면 800년 전 제국에 얽힌 세계관이나 버서커 클래스의 유래 등 서사를 더욱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겠지요. 이 부분을 배제하면 결국 ‘카잔의 복수극’이라는 일차원적인 이야기로 수렴되긴 합니다만, 복수극은 시대를 막론하고 꾸준히 인기를 끌어온 장르인 만큼 이건 이것대로 재미있긴 합니다.
▲ 카잔의 복수극이라는 큰 줄기는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는 편입니다.
전반적인 게임 디자인 또한 소울라이크의 문법을 많이 차용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스태미나 시스템입니다. <카잔>에서는 기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만 구조는 동일합니다. 약 공격, 강 공격, 방어, 회피 등 대부분의 전투 행위가 이 스태미나를 기반으로 이루어집니다. 결과적으로 스태미나라는 한정된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컨트롤하느냐가 전투의 핵심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런 유형의 게임은 전투를 느리고 묵직하게 가져갑니다. 그런 만큼 플레이어에게는 전투 과정에서 주어지는 정보를 인식하고 대처법을 고민할 여유가 생깁니다. 한 번으로 안 된다면 두 번, 두 번으로 안 된다면 세 번.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도 정보는 꾸준히 쌓여갑니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점점 나은 결과를 만들고 마침내 승리를 거머쥡니다. 이때 얻는 성취감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 다크소울의 유다희씨 만큼이나 자주 보게 될 메시지
여기에 <카잔>은 자신만의 해석을 얹었습니다. <카잔> 또한 액션 쾌감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던파’ 시리즈의 한 갈래인 만큼 액션을 비중 있게 가져가고 싶었을 겁니다. 물론 장르 특성상 액션에 너무 힘을 실어버리면 본래의 맛이 죽어버릴 위험이 있겠습니다만, 그 부분에서의 완급 조절을 절묘하게 해냈습니다.
적의 패턴을 파악하고 틈을 노려 공격하는 큰 틀은 동일합니다. 다만 그 과정이 타 소울라이크에 비해 능동적이고 스피디합니다. 대치 상태에서 공격을 피한 후 반격하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견제를 넣으며 액션의 흐름을 이어가는 형태입니다. 그렇기에 일반 몬스터와의 전투는 시원시원하게 진행됩니다. 보스전에서도 눈치 싸움보다는 격렬한 공방을 주고받는 그림이 만들어집니다.
▲ 여타 소울라이크에 비해 전투가 능동적으로 이루어지는 편입니다.
▲ 위치만 잘 잡으면 일대다 전투도 크게 불리하지는 않습니다.
대체로 소울라이크의 전투는 회피와 패링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사이에서 가드가 갖는 위상은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카잔>은 정반대입니다. 가드, 정확히는 ‘직전가드’가 전투의 중심을 이룹니다. 액션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전투를 비교적 캐주얼하게 만들어주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직전가드. 이름처럼 공격이 닿기 직전에 가드를 하면 발동하는 시스템입니다. 직전 가드 성공 시 자신의 스태미나 소모를 대폭 줄이고 적의 스태미나를 깎아버립니다. 스킬 투자에 따라서는 상대의 체력도 소진시킬 수 있습니다. 게다가 가드 직후에는 빈틈도 거의 없기에 즉시 다른 행동으로 이어갈 수 있습니다. 직전 가드에 실패하더라도 일반 가드로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으니 리스크도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 덕분에 적의 패턴에 익숙해진 후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공세를 취할 수 있습니다. 소울라이크의 보편적인 형태인 ‘거리 조절 → 패턴 회피 → 공격’이 아니라 ‘공격 → 직전가드 → 공격’으로 액션을 이어가죠. 직전가드 또한 타격감이 상당히 좋고 공격 수단의 역할을 겸하기에 시종일관 자신이 전투를 주도한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 액션의 중심이 되는 직전가드. 손맛도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가드 사이에 공격을 욱여넣어 클리어 타임 단축을 노려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드가 만능인 건 아닙니다. <카잔>에서는 가드로 대부분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지만, 직전가드에 실패하면 스태미나가 크게 소모됩니다. 스태미너가 고갈되면 캐릭터가 그로기 상태에 빠지는데요. 이때는 받는 피해량이 대폭 증가합니다. 특정 보스는 즉사 수준의 공격을 가하기도 합니다. 또한,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잡기나 버스트 어택은 직전 가드로도 방어가 불가능하기에 회피와 카운터도 적절히 활용해야 합니다.
대신 이 그로기 시스템은 적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됩니다. 공격을 적중시키거나 직전 가드에 성공하면 적의 스태미너를 조금씩 깎을 수 있습니다. 스태미나가 고갈된 적은 일정 시간 그로기 상태가 되며 이때 ‘브루탈 어택’을 사용해 큰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적의 패턴을 무시하고 확실한 공격 타이밍을 만들어내는 만큼, 클리어타임 단축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그로기를 발생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플레이어의 심리를 절묘하게 자극합니다. 확정 딜타임이라는 거대한 리턴을 눈앞에서 흔들어 보이며 리스크를 감수하게 만들죠. 전투 자체는 여타 소울라이크보다 쉬운 편이지만, 플레이어 스스로 더 높은 리턴을 추구하도록 유도해 액션성을 강화하고 난도를 조절한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 적의 스태미너를 고갈시키면 그로기 상태가 됩니다.
강제로 딜타임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소울라이크를 플레이하다 보면 스태미나로 인해 아쉬운 상황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완벽한 딜타임인데 스태미나가 없어서 공격을 못 하는 상황이 대표적이죠. 스태미나 관리 또한 소울라이크의 일부이긴 합니다. 그러나 액션 게임에서 액션을 제한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점이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카잔>은 ‘스킬’이라는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스킬은 스태미나가 아닌 ‘투지’라는 별개의 자원을 소비하는 공격 수단입니다. 빈틈이 커서 무턱대고 내지르기는 어렵지만, 스태미나가 아쉬운 상황에서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장르의 정체성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준 시스템이라 생각됩니다.
▲ 보스 그로기까지 딱 한방이 부족한 상황.
이럴 때 스킬을 꺼내면 됩니다.
다만, 앞서 설명한 요소들로 인해 게임이 전반적으로 쉬워졌습니다. ‘소울라이크는 어려워야 제맛’이라 외치는 팬들에게 <카잔>의 난이도는 살짝 아쉬울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체험판에서 공개된 분량만으로 판단한 내용이기에 정식 버전에서는 평가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 소울라이크에 관심이 있음에도 어려워서 망설였던 플레이어라면 <카잔>은 딱 좋은 가이드라인이 될 법합니다. 더욱이 이번 체험판에서 쉬움 난이도가 추가되면서 진입 장벽이 한층 낮아졌습니다. 몬스터의 패턴에는 변화가 없는 대신 스태미나 소비나 받는 대미지가 대폭 감소하기에 한층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 쉬움 모드에서는 스태미너 소비량과 받는 대미지가 대폭 감소합니다.
게임의 완성도는 이미 상당한 수준입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분량이 훨씬 많긴 하지만, 체험 버전 만으로도 <카잔>이 추구하는 액션의 방향성은 충분히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익숙한 요소들을 절묘하게 버무려 <카잔>만의 독특한 색채를 만들어 냈죠. 플레이어들의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인 편입니다. 1월 24일 기준 스팀 평가는 ‘매우 긍정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는 3월 28일, ‘던전앤파이터 유니버스’의 본격적인 확장을 알리는 <퍼스트 버서커: 카잔>의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신수용 기자(ssy@smartno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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