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문화였던 ‘서브컬쳐’가 점차 트랜드로 올라서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게임 시장에 서브컬쳐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더욱 가속화됐습니다. 이는 한국 성우 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오타쿠 문화는 일본 성우가 근본이라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게임에 한국 성우의 목소리가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한때 마이너스 요소로까지 취급 받던 한국어 더빙이지만, 지금은 팬들이 먼저 나서서 이를 요구하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기도 합니다.
이런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성우의 대중화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성우 자체에 대한 소비도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름과 목소리로만 알려져 있던 성우의 모습을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게 됐고, 좋아하는 성우를 만나기 위해 몰려온 팬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그리 드물지 않습니다.
얼마 전 ‘나 혼자만 레벨업 -리어웨이크닝-’ 시사회를 맞아 두 성우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민승우’ 성우와 ‘신나리’ 성우입니다. 애니메이션 시사회에 주요 배역을 담당한 성우가 무대 인사를 나오는 게 그리 드문 일은 아닙니다만, 그 작품이 한국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은 정말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민승우’는 올해로 데뷔 10년 차를 맞는 중견 성우입니다. 원펀맨의 제노스 역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스파이패밀리의 로이드 포저를 거쳐 나 혼자만 레벨업의 주인공 성진우 역을 맡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성우 중 한 명으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미성이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의 소유자인 만큼, 주로 쿨한 미청년 계열의 배역을 담당하는 편입니다.
‘신나리’는 2020년 11월에 데뷔한 비교적 신인에 해당하는 성우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넓은 연기 폭은 베테랑 성우 못지않습니다. 명조의 장리, 젠레스 존 제로의 니콜, 소녀전선2의 네메시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스몰더, 니케의 마스트 등 한 사람이 연기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내고 있죠. 우아한 여성, 진지한 여성, 유머러스한 여성 캐릭터 외에 악동 같은 소년 캐릭터까지 연기해 보이며 팬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장차 한국 성우계를 이끌어나갈 두 주역. ‘나 혼자만 레벨업’의 주인공 남매. 성진우 역의 ‘민승우’ 성우와 여동생 성진아 역의 ‘신나리’ 성우를 AGF 2024 현장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Q. 성우라는 직업을 목표로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신나리 : 원래 애니메이션과 게임에 관심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성우분들을 동경하게 됐는데요. 우연히 중학생 때 방송반에서 아나운서 활동을 하면서 말하는 것에 자신감을 갖게 됐고, 그러면서 ‘나도 성우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3만원짜리 콘덴서 마이크를 구매해서 셀프 녹음을 하며 놀았던 것이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도 방송반으로 활동하고, 대학교에서도 아나운서 활동을 하면서 말하는 것과 관련된 작업을 계속해 왔고요.
· 민승우 : 저는 학창 시절에 쭉 공부만 하면서 지냈는데요. 그러 다보니 10대 때는 되게 우울했어요. 입시에 쫓기면서 계속 공부만 하다가 법대로 진학했는데, 그 후로도 계속 책 보면서 공부만 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던 차에 음악으로 위로를 받았죠.
그때 음악 관련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음악에 위로받았던 것처럼, 음악으로 다른 사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제가 음악에 재능이 없더라고요. 노래도 안 되고, 악기도 안 되고, 그러면서 ‘소리’와 관련된 직업 중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그게 성우였어요. 당시에는 ‘성우야말로 내 마지막 기회’라는 마음가짐이었던 것 같아요.
Q. 성우가 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데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 민승우 : 아무래도 어렵죠. 요즘은 경쟁도 치열하고 잘하는 분도 많이 계시니까요. 저도 열심히 했는데 운도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마침 제가 들어오던 시기에 채용이 멈춰있던 방송국에서 갑자기 채용을 시작했고, 그쪽에서 원하던 인재상에 잘 맞아떨어지면서 운 좋게 빨리 성우로 활동할 수 있었죠. 빨리 들어올 수 있었고 들어와서 고생을 좀 많이 한 케이스인 것 같네요.
· 신나리 : 저도 공부를 꽤 오래 한 편인데요. 합격하기 직전 해에 같은 방송사에 최종 면접까지 갔다가 떨어졌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1, 2, 3차를 통과하고 4차가 마지막이었는데 거기서 떨어지고 1년을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상실감이 정말 크더라고요.
그 후로 한두 달 정도는 ‘내가 왜 떨어진 걸까’를 계속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혼자 생각해 봐야 결국 정답을 알 수는 없는 문제였기에 고민을 그만두고 대신 다른 것들을 더 채워나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 후로 심기일전해서 다음해 같은 방송사에 합격했습니다.
· 민승우 : 보통은 신나리 성우 같은 상황이 많이 나와요. 저도 그 직전에 최종에서 떨어졌거든요. 그때가 12월이었는데 우울감과 상실감에 빠져들려던 찰나에, 예정에 없던 공채가 1월에 뜨더라고요. 그걸 보고 ‘상실감에 빠져 있을 시간도 없다’라면서 마음을 빨리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봐도 제가 운이 참 좋았던 것 같네요.
Q. 성우로서 자신의 활동 영역을 확장하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민승우 : 이 부분도 여러모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역시 열심히 노력하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요. 저희가 활동하는 시대에서 운도 그만큼 따라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제가 성진우 역을 담당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냥 열심히 활동하던 차에 운 좋게 이런 제안과 기회를 받은 것으로 생각해요.
다만, 평소에 준비가 잘 되어 있어야만 기회가 왔을 때 그걸 붙잡을 수 있는 것 같아요. 특히 다른 매체나 콘텐츠에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하죠. 크리에이터분들의 작품, 방송국 프로그램, 책 등 평소에 다른 매체에 관한 관심을 두고 있어야 기회가 왔을 때 확실히 잡을 수 있어요.
· 신나리 : 저도 비슷한 생각인데요. 성우 외의 영역으로 활동을 확장하는 것도 좋은데, 성우 내에서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광고, 게임, 애니메이션 등 주로 활동하는 영역 외의 분야에도 관심을 두고 계속 연습해야 기회가 왔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Q. 두 분의 커리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 민승우 : 저는 매일매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원펀맨의 제노스 역에 캐스팅됐을 때 “드디어 해냈다”라고 생각했는데, 중요한 배역을 하나 맡았다고 해서 앞날이 바뀌거나 다음 배역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고요. 기회는 조금 더 주어질 수 있겠지만 그만큼 평가 기준도 더 엄격해지고,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오히려 앞으로의 기회마저도 줄어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희는 계속 평가받고 인정받아야 하는 직업이에요. 스파이패밀리에서 로이드라는 배역을 맡았는데, 이걸 했다고 해서 성진우로 이어지지는 않아요. 모든 배역이 개별적인 거죠. 지금까지의 활동하며 많은 분께 인정받고 그것들이 쌓이면서 조금씩 평가가 만들어지는 만큼 매 순간을 중요하게 여겨야 해요. 조금 인지도가 생겼다고 해서 방심하는 순간 그게 제 평가로 돌아온다는 걸 알기에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마음은 신인 때와 똑같은데, 컨디션이 신인 때와 같지 않다는 게 슬프네요.
· 신나리 : 저는 한 달 전에 데뷔한 지 5년차가 됐는데요. 지금까지 활동해 오면서 늘 ‘신인때가 가장 중요하다’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어요. 신인때는 첫 눈도장을 찍는 순간이 많은데 그때 잘해야 다음이 있거든요. 민승우 성우님 말씀대로 늘 증명해야 하는 시간인 것 같아요.
· 민승우 : 이건 제가 10년 전에 선배님들께 들었던 말인데요. 신인 때는 그렇게 일이 많지 않으니까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노는 날이 생겨요. 그런 날들이 쌓이면 너무 불안해져서 선배님께 여쭤봤더니 “야, 우린 평생 불안해”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있어요. 10년이 지난 지금도 하루 이틀만 일이 안 들어오면 벌써 하락세인건 아닌지 불안해지는데 이런 감정은 평생 같이 가야 하는 것 같아요.
Q. 민승우 성우님은 올해로 데뷔 10주년인데 10주년을 맞은 기분이 어떠신가요?
· 민승우 : 감사하다는 말을 제일 먼저 하고 싶네요.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과 모든 상황에 너무 감사합니다. 여러 곳에서 저를 캐스팅해 주신 덕분에 제가 쓰임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고, 팬분들께서 제 활동과 참여한 작품을 좋게 봐주신 덕분에 다양한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실감은 잘 안 나요. 자신도 “벌써 10년이나 됐다고?”라는 느낌인데, 옆에 있는 신나리 성우 같은 후배들을 보면 세월이 흘렀다는 게 인식되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아직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위치와 입장에 감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것 같네요. AGF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굉장히 기쁘고, 담담한 척하고 있지만 사실 속으로는 환호성을 지르고 있어요.
Q. 성우가 되기 전에 AGF 같은 서브컬쳐 행사에 가본 적 있으신가요?
· 민승우 : 제가 성우 지망생이던 시절에는 AGF가 없었고 대신 서울 코믹 같은 행사에 가본 적은 있어요. 학여울, 세텍, 킨텍스 등 여기저기 쫓아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성우로서 처음 이름을 알린 배역이 원펀맨의 제노스인데, 그 해에 서울 코믹을 가봤더니 제노스 굿즈들이 쫙 깔려 있더라고요. 그게 최초로 ‘성공했다’라는 기분을 느꼈던 오프라인 이벤트였어요.
Q. 민승우 성우님의 배역을 보면 제노스나 성진우 같은 쿨한 미청년 캐릭터의 비중이 높은 것 같습니다. 혹시 그 외에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유형의 캐릭터가 있을까요?
· 민승우 : 이건 평소에 생각해 오던 게 있어요. 저는 악역을 너무 좋아합니다. 현실에서는 지탄받는 나쁜 짓들도 배역이라면 오히려 합법적으로, 심지어 잘하면 잘할수록 좋은 평가를 받는 신기한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악역을 너무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지금까지의 이미지가 선한 계열이다 보니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는 않았어요. 욕심을 내보자면 악역으로 배역을 확장해서 여러분께 “정말 때려주고 싶다”는 평가를 받아보고 싶습니다. 악역에게는 그게 최고의 칭찬이거든요.
Q. 신나리 성우님께서 담당하신 배역을 보면 연기 폭이 무척 넓으신 것 같아요. 니콜, 장리, 나베랄, 마스트, 스몰더 등 정말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를 연기하셨는데, 본인이 가장 자신 있는 캐릭터 혹은 연기해 보고 싶은 캐릭터는 어떤 유형인가요?
· 신나리 : 아직은 자신 있다고 말할 만한 캐릭터는 없는 것 같아요. 그저 매 순간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편이고요. 제가 연기하기 좋아하는 유형은 텐션이 높은 캐릭터인 것 같아요. 제 목소리 톤이나 평소 성격이 진중한 편이다 보니까 클로린드나 나베랄 같은 진중하고 각 잡힌 캐릭터가 잘 어울린다고 말씀해 주시는데요. 저는 오히려 마스트나 스몰더처럼 말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배역을 더 좋아하는 편이에요.
어떻게 말해야 더 재미있을까를 고민하는 과정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더라고요. 클로린드나 장리는 다소 절제된 성격이다 보니까 표현에 한계가 있고 그 선을 지키는 게 어려웠어요. 이 캐릭터를 좀 더 표현하고 싶은데 캐릭터의 성격상 거기까지 하면 안 되니까 절제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죠.
· 민승우 : 저도 정말 공감하는 부분이에요. 그런 캐릭터는 늘 답답함과의 싸움이거든요. 성진우를 연기하다 보면 정말 신나는 상황이 생기는데 성진우라는 캐릭터는 그걸 너무 드러내면 안 돼요. 그렇다고 아예 표현이 없는 캐릭터는 아니니까 제한된 범위 안에서 어떻게든 표현해야 하는데 정말 죽겠더라고요(웃음).
Q. 일상에서의 일이 성우 활동에 도움이 된 경우도 있을까요?
· 민승우 : 제가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에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과 모나지 않게 섞이고 싶어서 관찰을 많이 하는데, 그 행위가 저에게는 없는 성격이나 캐릭터를 창조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제 성격과 거리가 먼 배역을 연구할 때 그 사실을 처음 깨달았죠. 주변에 그 캐릭터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떠올려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연기해 보니까 정말 쉽더라고요. 그때 제가 주변을 많이 관찰하고 특징을 잡아내는 걸 잘하는 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어요.
비슷한 조언을 구하시는 분들께도 그런 말씀을 드리고 있어요. 성대모사 연습이 연기에 큰 도움이 된다고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재미 본위로 접근해 보는 것도 괜찮아요.
· 신나리 : 자신의 감수성을 키우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감수성을 키우려면 대본을 들여다보기만 하지 말고 세상을 봐야 해요. 이건 마지막에 저를 합격시켜 주신 은사님께서 알려주신 방법인데요. 지나다니면서 계절을 많이 느껴보라고 하셨어요.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 그에 대한 감상을 떠올려보고, 그런 감성이 죽지 않도록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요. 일상이 보물창고고 인생 자체가 교본인 셈이죠.
Q. 성우 일을 함에 있어서 재능과 노력 중 어느 쪽의 비중이 더 크다고 생각하시나요?
· 민승우 :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예체능은 재능의 비중이 더 큽니다. 그건 사실이라 생각해요. 예를 들어 재능이 90이고 노력이 10이라고 가정하면, 실제로 이 90의 재능을 모두 가진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결국은 비슷한 재능을 가진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노력으로 경쟁을 하게 되는 거죠.
예체능에서 소수의 천재는 어쩔 수 없다고 봐요. 모든 사람이 지드래곤, 모차르트, 알파치노가 아니잖아요? 그렇기에 우린 모두 비슷한 선상에서 노력으로 판가름 날 수 있으며, 소수의 천재와 자신을 비교해서 좌절하거나 비하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신나리 :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재능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해서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재능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거든요. 목소리 톤이 굉장히 좋은 것도 재능이겠지만, 순발력이 좋거나 성대모사를 잘하는 것도 재능이고 노력도 재능이고요. 요구사항을 들었을 때 바로 연기에 반영할 수 있는 센스도 재능이라고 봐요. 그렇기에 본인의 재능이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해 보시고 거기에 노력을 더하면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합니다.
Q. 이번에 ‘나 혼자만 레벨업’을 통해서 이렇게 두 성우님을 만나게 됐는데요. 두 분께 ‘나 혼자만 레벨업’은 어떤 작품인가요?
· 신나리 : 지금 이렇게 인터뷰하는 자리를 비롯해서 지난번 무대인사도 그렇고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하게 해준 감사한 작품인 것 같아요.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으려나 싶기도 하고요. 이런 훌륭한 작품을 만난 덕분에 뜻깊은 기회가 생긴 것 같고, 그런 만큼 열심히 참여해서 이 작품에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민승우 : 거의 비슷한 대답일 것 같은데요. 저는 평소에 저희가 성우지 연예인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대인사나 GV를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어요. 저는 누워서 웹툰 보는 걸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아예 PC나 TV도 안 켜고 누워서 휴대폰만 만질 정도예요. 웹툰도 판타지, 회귀물 등 제목을 줄줄이 읊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봤고 그중에는 당연히 나혼렙도 있고요.
그런 제가 글로벌 143억 뷰를 달성한 작품의 주인공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어요.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는 상황도 꿈 같고, 시간이 지나간 후에는 너무 그리울 것 같기도 해요. 조금 욕심을 내자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나 혼자만 레벨업’은 저 스스로가 ‘지금이 인생의 전성기’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줄 정도로 고마운 작품이에요. 그렇다 보니 10~20년 뒤에도 계속 이 이야기만 하고 있을까봐 걱정이긴 합니다. “너 나 혼자만 레벨업이라고 아냐? 나 때는 말이야, 이게 최고였어”라면서요.
Q. 나 혼자만 레벨업에 캐스팅됐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특히 민승우 성우님은 웹툰을 완독할 정도로 좋아한다고 말씀하셨는데.
· 민승우 : 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인 것 같아요. 오디션을 보고 확정 연락이 오기까지 반년 정도 걸렸는데요. 보통 6개월이나 연락이 없으면 떨어졌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이사이에 계속 연락을 주셨어요. 성진우 역할로 가장 유력하신데, 판권사 협의에 시간이 오래 걸려서 아직 확정이 나지 않았다면서요.
그런데 배역이 확정되기 전에 지스타에서 작품을 선 공개하게 됐어요. 거기서는 제 목소리가 들어갔거든요. 그래도 지스타까지 왔으니 이쯤이면 ‘내가 성진우 아닌가?’ 싶었는데 그때까지도 확정은 아니더라고요. 정말 오랫동안 희망 고문을 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다 보니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는 몸에 힘이 쫙 빠지면서 안도감이 들더라고요.
· 신나리 : 저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내가 진아를 맡아도 되나?’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어요. 진아 외에 다른 캐릭터들을 맡고 있었기에 스토리를 파악하려고 작품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진아의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오더라고요. 주인공의 가족이라는 중요한 역할이 주어졌다는 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어요. 그리고 이 고등학생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특히 한국 작품이고 저도 여고생이었던 때가 있다 보니 지금의 내가 어떻게 리얼한 한국 여고생을 표현할 수 있을까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Q. 나혼자만 레벨업에서 민승우 성우님은 주인공 성진우, 신나리 성우님은 여동생 성진아를 담당하셨는데요. 두 분께서는 자신이 담당한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연기하셨나요?
· 신나리 : 진아는 엄친딸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어요. 빠지는 데가 없어요.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고, 가족애도 좋고요. 그런데 평소의 씩씩한 모습의 이면에는 불안해하는 모습이 있는 것 같았어요. 어머니는 병상에 누워 계시고, 아버지는 행방불명이고, 오빠는 밖에서 자꾸 다쳐서 돌아오기 때문에 늘 걱정과 불안 속에서 지내고 있죠. 그런 두 모습의 대비를 의식하면서 연기하고 있습니다.
· 민승우 :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진우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실 텐데요. 작품 내에서도 성진우의 속마음이 곧이곧대로 다 나오기 때문에 그 감정선을 최대한 잘 따라가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특히 결핍에 많이 집중했습니다. 진우는 그런 결핍을 원동력으로 삼아서 계속 일어나고,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끝까지 올라가려는 의지를 가졌죠. 그래서 결핍과 상실에 대한 억울함, 분노, 지켜야 할 것에 대한 책임감 등을 계속 의식했어요.
그런데 일반 소년만화처럼 정의롭기만 한 캐릭터는 아니잖아요? 한순간이라도 캐릭터가 단편적인 모습으로 비치면 안 되니까 그 부분도 특히 신경을 썼고요. 결핍과 의무, 부족한 자신에 대한 분노를 계속 가져가는 방향으로 연기를 했습니다.
Q. SNS가 발달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로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죠. 두 분께서는 성우라는 직업의 경계를 어디까지로 보시나요?
· 신나리 : 자신의 목소리를 활용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성우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민승우 : 신나리 성우님이 너무 완벽하게 정리를 해주셨어요. 저도 이제 성우는 공개 채용으로만 구분하기에는 경계가 많이 무너졌다고 생각해요. 결국 우리는 대중이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역할이잖아요? 오디션을 안 봤으니 성우가 아니라는 말은 시대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수익을 창출해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면 그게 곧 직업이죠.
Q. 그렇다면 두 분의 인생에서 원하는 레벨업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 민승우 : 내가 이 세계에서 최고 레벨은 아닐지라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NPC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여러분과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어요. 처음 로그인하면 만나는 그런 NPC로서 항상 그자리에서 여러분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성우 민승우라는 이름이 여러분께 오래토록 기억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 신나리 : 제가 원하는 레벨업의 모습은 팔방미인이에요. 성진우가 레벨업을 하면서 스탯을 찍는 것처럼 저도 스탯을 찍는다면 육각형으로 골고루 찍고 싶어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배역으로 시청자와 게이머분들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인생의 레벨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민승우 : 포기하지 마세요. 버티세요. 버티는 거예요. 버텨서 마지막에 남은 사람이 결국은 레벨업을 합니다. 본인은 레벨업을 한 줄 몰라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멈췄을 때도 계속 버티면서 나아가다 보면 결국 내 레벨은 더 올라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스스로는 체감하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주변에서 제가 달라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묵묵히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서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레벨은 올라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신나리 : 참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우리 인생은 게임이랑은 다르게 언제나 레벨업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민승우 성우님 말씀처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려면 중간중간 휴식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달려 나가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는 거죠. 대신 관성에 이끌려서 침체되어 있으면 안 되요. 이 과정을 해나가다 보면 차근차근 레벨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두 분을 응원해 주시는 팬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 민승우 : 다양한 문화를 즐기고 아껴주시는 팬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여러분 덕분에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일하면서 인사드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감사드리고 그 마음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항상 최선을 다해 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신나리 : 원작 팬의 한 명으로서 말씀드리자면, 나 혼자만 레벨업 점점 재미있어지는 작품이니까 웹툰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에도 함께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러분의 사랑이 있어야 애니메이션도 계속 제작될 수 있으니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신수용 기자(ssy@smartno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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