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0챔버스가 자사의 신작 <덴 오브 울브즈>의 시연 버전을 최초로 공개했다. 2023년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된 <덴 오브 울브즈>는 ‘페이데이 시리즈’와 ‘GTFO’로 쌓은 개발진의 노하우에 텐센트의 막대한 자본이 더해져 역대급 게임의 탄생을 예감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유나이트 2024에서 테크 데모가 공개됐을 때 팬들의 반응은 무척 뜨거웠다.
<덴 오브 울브즈>는 근미래 가상의 도시를 무대로 펼쳐지는 협동 슈터 게임이다. 개발진의 전작 ‘페이데이’ 시리즈의 핵심 소재인 ‘하이스트’와 ‘GTFO’의 핵심인 고난도 협동 임무라는 요소를 적절히 조합해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플레이 경험을 선사한다.
<덴 오브 울브즈>의 이야기는 2030년 전례 없는 AI 기반의 사이버 어택에서 시작된다. 이 공격으로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붕괴되고 시장과 정부가 혼란에 빠진다. 해커들이 퍼트린 허위 정보로 전 세계적 공포가 조성되면서 전쟁 위기로까지 이어진다.
이런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은 태평양의 한 섬에 전략적 요충지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인간의 두뇌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 전송 및 저장 기술을 개발해 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사이버 공격에 대한 완벽한 보안을 갖춘 장소. 그 이름은 ‘미드웨이 시티’. 플레이어가 활약할 무대이기도 한 곳이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할 난이도는 전작인 ‘GTFO’와 비교하자면 대폭 완화된 편이다. ‘GTFO’의 경우 기본적인 문법은 협동 FPS의 방식을 차용하고 있으면서도 주된 플레이 경험은 슈터보다는 잠입, 임무 수행, 탈출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탄약을 비롯한 각종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도 게임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였다.
즉, ‘GTFO’는 보편적인 협동 슈터와는 다소 다른 방향의 재미를 추구한 셈이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적을 쓸어버리는 쾌감보다는 서로 합을 맞춰 어려운 임무를 기어코 완수해 냄으로서 얻는 성취감. 그것이 게임을 플레이하게 만드는 주 원동력이다. 적과 싸우는 과정이 아니라 목표를 달성해낸다는 결과에 재미의 초점을 맞춘 셈이다.
반면 <덴 오브 울브즈>는 큰 틀에서는 보편적인 협동 슈터와 유사한 문법을 가져간다. 추구하는 재미의 방향도 임무 수행보다는 슈터 액션 쪽의 비중을 더 높게 가져간다. 물론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큰 틀은 동일하다. 그러나 목표 지점이 확실하게 표시되고 탄약 등의 자원도 교전을 피해야 할 정도로 부족하지는 않기에 좀 더 전투에 집중할 수 있다.
‘GTFO’에서 추구하던 재미의 방향성을 완전히 버린 건 아니다. 그러나 전작에 비해 플레이가 풍족(?)해진 만큼 목표 달성 후의 성취감은 상대적으로 약해진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신 짜임새있는 세계관과 강화된 네러티브를 통해 플레이어의 몰입감을 높임으로써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있다.
미드웨이 시티에서는 정부가 아닌 기업이 모든것을 지배한다. 전 세계적인 혼란에서 벗어나고자 미드웨이 시티를 기업 보호구역으로 설정하고 행정 규제 및 법률 조항을 면제해준 결과다. 온갖 비윤리적인 행위가 난무하고 극단적인 빈부격차가 생긴 디스토피아. 그것이 미드웨이 시티의 본질이다.
주인공은 그곳에서 활동하는 범죄 기업가다. 그 이름처럼 기업의 사주를 받아 음지에서 각종 불법적인 일을 처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주로 산업 스파이, 방해 공작, 암살, 프로젝트 탈취 등의 일을 하며, 때로는 조금 전까지 같은 편이었던 기업의 뒤통수를 치거나 처음부터 배신할 작정으로 위장 잠입하는 등 온갖 범죄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른다.
시연 버전에서는 단 두 스테이지만을 체험해볼 수 있었지만, 전장 곳곳에 펼쳐진 환경, 플레이어가 처한 상황, NPC들의 대사 및 각종 상호작용 등에서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가 드러났다. 아직 별다른 네러티브가 제공되지 않았음에도 그저 분위기만으로 그만한 몰입감을 보여주었으니 완성된 이후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시연은 사전 미션과 메인 미션으로 나눠 진행됐다. 10챔버스 측의 설명에 의하면 이 사전 미션의 결과에 따라 메인 미션의 진행 방식이 달라진다고 한다. 시연을 위해 준비된 사전 미션은 한 종류 뿐이었으나, 추후에는 다양한 방향으로 미션을 진행할 수 있도록 종류를 늘릴 예정이라는 설명이다.
사전 미션의 목표는 한 시설에 숨어 들어가 메인 미션 진행에 필요한 장비를 훔쳐내는 것이다. 미션이 시작되면 각 플레이어는 은신 장치로 모습을 감춘 채 목표 지점까지 은밀하게 이동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도 게임의 분위기가 어렴풋이 드러나는데, 은신 기술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세계관인지 적 또한 시각이나 청각이 아닌 신경망이라는 특수한 수단으로 침입자를 감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잠입 도중 발각당한다고 해서 미션에 실패하지는 않는다. 단지 미션을 진행하는 방식이 잠입에서 섬멸로 바뀔 뿐이다. 실력에 자신 있는 플레이어라면 처음부터 모든 적을 사살하면서 진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등장하는 적이 점점 강해지는 데다 탄약에 제한이 있는 만큼 불필요한 교전을 피하는 쪽이 성공 확률도 높아진다.
사전 미션에 실패하면 메인 미션의 진행 방식이 바뀐다는 점도 독특한 부분이다. 메인 미션의 목표는 금고를 점거한 적대 세력으로부터 정보를 탈취하는 것이다. 이때 사전 미션에 성공했다면 안전하게 내부로 잠입해서 미션을 시작하며, 사전 미션에 실패했다면 외부에서 적대 세력의 저항을 힘으로 뚫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난이도는 ‘GTFO’와 비교하면 확실히 쉬워졌다. 그러나 여전히 타 협동 슈터와 비교하면 어려운 편이다. 특히 금고에 구멍을 뚫는 등의 기믹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몰려오는 적과도 싸워야 하는 만큼, 팀원 간의 긴밀한 협동은 필수적이다.
시연회에서는 미션 시작에 앞서 실제 지도를 펼쳐놓고 한 차례 브리핑이 진행됐다. 그럼에도 첫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아무런 준비 없이 사방에서 몰려오는 적을 동시에 상대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를 교훈 삼아 두 번째 시도에서는 공격 루트가 제한되는 위치에 거점을 잡았고 비교적 빠르게 클리어할 수 있었다. 작전의 중요성을 체감할 수 있었던 만큼, 추후에는 게임 내에 브리핑 시스템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막바지에는 <덴 오브 울브즈>의 최대 특징인 ‘다이브’를 체험해 볼 수 있었다. 다이브는 ‘인간의 뇌를 해킹해서 정보를 탈취’하는 과정을 기믹화한 콘텐츠다. 다이브가 준비되면 10초의 카운트다운 후 그 자리에서 즉시 다이브에 돌입하며, 인간의 정신세계를 표현한 초현실적인 필드로 이동해서 임무를 이어 나간다.
필자는 중력이 이상하게 적용되는 세계에서 제한 시간 내 목표 지점에 도착해야 하는 플랫포머 형태의 임무를 수행했다.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붉게 물든 화면과 기괴하게 뒤틀린 BGM이 불안감을 자극한다는 점이었다. 의외로 제한시간에는 여유가 있음에도 이런 요소들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실수를 연발하게 되는 것은 제법 신선한 경험이었다.
지난 인터뷰에서 10챔버스 공동 창업자 ‘사이먼 비클룬드’는 다이브를 ‘한계 없는 자유’라 표현한 바 있다. 그런 만큼 높은 자유도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고 한다. 추후에는 이번에 체험한 플랫포머 게임 외에도 온갖 기상천외한 형태의 다이브를 선보일 예정이다.
다이브가 끝나면 다이브 세계로 넘어가기 직전의 상황에서 플레이를 그대로 이어간다. 만약 다이브에 실패했다면 잠시 후 다시 시도할 수 있으며, 성공했다면 탈출로를 확보하기 전까지 몰려드는 적을 계속 막아내야 한다. 적의 공격이 가장 거세지는 시점이기에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아선 안 될 일이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벽을 뚫고 탈출에 성공하는 그 순간 짜릿한 희열감이 전신을 때렸다. 과정이 어려울수록 성공의 기쁨이 커지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그렇다고 게임을 무작정 어렵게 만들어서는 안 될 일이다.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의 흥미를 자극하고 도전에 대한 원동력을 제공하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협동 슈터라 불리는 ‘GTFO’가 그럼에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부분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물론 <덴 오브 울브즈>가 완벽한 게임은 아니다. 그러나 10챔버스가 추구하는 ‘협동 게임’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 뿌리는 확실하게 뻗어 있는 상태다. 단순히 같은 공간에서 싸운다는 개념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협동과 소통이 요구되는 게임.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시연 버전임에도 그 점만큼은 분명히 체감할 수 있었다.
새로운 협동 슈터 게임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기, <덴 오브 울브즈>가 가뭄의 단비 같은 작품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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